현세의 행복과 지장보살

♣ 왜 내원궁에 지장보살이?


동백꽃으로도 유명한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에는 도솔암이라는 암자가 있고,
이 도솔암에서 365계단을 올라가면 '도솔천 내원궁'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법당이 나타난다.

도솔천 내원궁! 불교의 세계관에서 볼 때 도솔천은 욕계(欲界)의 6천(天) 중 네 번째 하늘에 해당하며, 그 도솔천의 중심부에 내원궁(內院宮)이 자리잡고 있다.

이 내원궁은 극락세계와 함께 불교의 대표적인 정토(淨土)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재 내원궁에는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보살이 머물러 계시면서 법을 설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도솔암의 '도솔천 내원궁'의 문을 열어보면,
미륵보살은 보이지 않고 보물 제208호로 지정된 지장보살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참배객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게 만드는 아름답고 당당한 지장보살님의 모습이. 비례감이 매우 뛰어나면서도 몸의 어느 한 곳에 인위적인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단정한 자세를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한 다음 성불하겠다."고 맹세한 지장보살의 의지가 풍겨져 나옴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초승달 같은 눈썹, 긴 눈매, 오뚝한 코, 단아한 입술 등 단정하면서도 다소 여성적인 얼굴 모습에는 지장보살의 깊은 사랑이 배어 있는 듯하다.
아울러 이 지장보살님께 예배를 드리면, 도솔암이 한국의 대표적인 지장성지가 된 까닭을 저절로 느낄 수가 있다.

이제 이 지장보살상에 대해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도솔천 내원궁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륵보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왜 지장보살이 좌정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원래 미륵보살을 모셨던 이 법당이 폐허가 되자 다시 전각을 지어 지장보살을 모셨지만 이름만은 옛날 그대로 '도솔천 내원궁'으로 하였을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큰 억측이다

사찰의 전각 이름 중, 석가모니불이 아닌 다른 부처님을 모셔 놓고 그 전각 이름을 '대웅전'이라고 하는 것은 용났?수 있는 일이다.
어떠한 부처님도 영웅 중의 영웅이신 '대웅(大雄)'이시고, 그러한 대영웅을 모신 '큰법당'이 대웅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락전'이라 하여 놓고 아미타불 대신 약사여래를 모시거나, '관음전'이라 하여 놓고 문수보살을 주존으로 모실 수는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이름과 내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장보살만을 모신 전각을 '도솔천 내원궁'이라 할 때는 특별한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만 용납된다.
명분과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던 우리네 옛 스님들이,
불교 교리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편액을 달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오랫동안 그 까닭을 찾은 결과,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사바세계의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위촉받은 지장보살의 역할, 이 땅에 뿌리 깊게 전승되어 온 참회불교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심도 있게 살펴보면서, 지장신앙의 참된 면모를 함께 규명해 보고자 한다.

♣ 석가모니불의 부촉과 지장보살의 맹세

"지장경"을 보면, 지장보살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말세중생(末世衆生)의 제도를 부촉(咐囑)받는 장면이 두 차례 묘사되어 있다.
석가모니께서 열반에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수많은 분신(分身)을 이 사바세계에 나타내어 일체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당부 받은 것이다.

"나는 이 사바세계에서 억세고 거친 중생을 교화하여,
그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그 중 열에 한두 명은 아직도 나쁜 버릇에 빠져 있느니라.

그대는 스스로가 지은 억세고 거친 죄업의 과보로 나쁜 세상에 떨어져 큰 고초를 받는 중생을 보거든 내가 이 도리천궁에서 간절히 부촉한 것을 생각하여,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오실 때까지 중생들이 모든 고통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장차 미륵불을 만나 뵙고 수기를 받을 수 있게 할지니라."

그때 모든 세계에서 모인 지장보살의 분신들은 다시 한 몸이 되어 애절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의 분신으로 하여금 모든 세계에 가득차게 하고 그 한 몸마다 백천만억 사람을 제도하여 삼보에 귀의하게 하며, 길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락(涅槃樂)에 이르도록 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마옵소서 ."

<분신집회분(分身集會品)>

"현재와 미래의 모든 중생을 내 이제 그대에게 부촉 하노니 그대는 큰 신통과 큰 방편으로 중생들을 두루 널리 제도하여 나쁜 세상에 떨어지지 않게 하라"
이때 지장보살이 무릎을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대 염려를 놓으소서. 미래세 중에 혹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불법(佛法)에 대해 한생각의 공경심만 있어도,
또는 백천 가지 방편으로 그 사람을 제도하여 생사(生死) 중에서 속히 해탈을 얻게 할 것이옵니다."

<촉루인천품(囑累人天品)>

도리천궁에서 열반 직전에 "지장경"을 설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부처님 공백기' 동안에 중생을 제도할 이로서 지장보살을 지정하셨다.
'내가 못 다한 일을 지장보살이 계속해 줄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이에 지장보살은 '불법에 대해 한 생각의 공경심만 있는 이라면 갖가지 방편을 구사하여 반드시 그 사람을 제도하고 고통을 벗어나게 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특히 <분신집회품>에서는 후세 중생을 '책임지겠다'고 세 번이나 맹세하였다.
세 번의 맹세는 불경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왜 세 번씩이나 맹세를 하였는가?
그만큼 틀림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상에서 살펴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의 후세 중생에 대한 교화를 지장보살에게 부촉하셨다.

그 부촉은 어떠한 보살이나 제자들에게 했던 것보다 간곡하였고, 지장보살의 맹세 또한 지극하였다.그렇기 때문에 선운사 도솔암의 '내원궁'에다 미륵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것이다.

곧, 현재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 미래불 미륵보살을 대신하여 이 사바세계에서 활동하면서,
중생들에게 현실적인 행복을 안겨주고 마침내는 미륵의 정토로 인도하는 분이 지장보살이기 때문에 '내원궁'에다 지장보살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이다.

♣ 지장신앙의 현실적 이익

그럼 지장보살을 신봉하는 이가 얻게 되는 현실적인 이익은 어떠한 것인가?
이 또한 후세 중생의 행복에 대한 부처님의 부촉과 지장보살의 맹세가 지극한 때문인지,
그 이익이 "지장경"에 여러 차례 설하여져 있다.

7종 이익, 10종 이익, 28종 이익이 그것이다.
서로가 다소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의 신심을 북돋우는 의미에서 이를 모두 열거하여 보자.

<7종 이익>

1. 속히 성현의 땅에 오른다.(速超聖地)
2. 악업이 소멸된다.(惡業消滅)
3. 모든 부처님이 지켜준다.(諸佛護臨)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본원력이 더욱 더 커진다.(增長本力)
6. 숙명을 통달한다.(宿命皆通)
7.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이 7종 이익은 특히 수행하는 이들과 관련이 깊다.
불교공부에 뜻을 둔 이가 지장보살을 신봉하게 되면 악업이 소멸되어 빨리 성현의 땅에 이르게 되며, 부처님의 가피 아래 보리심(菩提心)을 기르고 수행력을 증장시켜 신통력을 얻게 되고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전에 지장참회기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지장보살께 의지하여 업장을 참회한 다음 수행을 시작하게 되면,
공부가 잘 될 뿐 아니라 성취 또한 남다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장신앙'의 마지막회 원고에서 예화와 함께 그 방법을 밝히고자 한다.

<10종 이익>

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土地豊穰)
2. 집안이 안전하고 편안하다.(家宅永安)
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先亡生天)
4. 현세의 가족들이 장수한다.(現存益壽)
5.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진다.(所求遂意)
6.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無水火災)
7. 재물의 헛된 손실이 없다.(虛耗避除)
8.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된다.(杜絶惡夢)
9. 출입할 때 신장들이 보호한다.(出入神護)
10. 성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多遇聖人)

7종 이익이 수행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10종 이익은 현실적인 삶 속에서의 행복을 논한 것이다.
이 10종 이익과 다른 불보살을 믿는 이익을 비교해 볼 때 매우 특징적인 것은 제1 '농사짓는 땅에 풍년이 든다'는 것과 제3 '조상들이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제1 이익은 땅을 갈무리한다는 '地藏'의 의미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며,
제3 이익은 지장보살의 영가천도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풍년에다 조상의 생천(生天)만 하여도 기쁜 일인데,
집안이 편안하고 가족이 오래 살며,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지고 재물에 손실이 없고 재앙이 없으며,
잠자리까지 편안하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아가 신장이 보호해주고 성현도 많이 만날 수 있으니.

하지만 이 10종 이익에서는 특별한 부귀나 거대한 권력 등은 논하지 않고 있다.
그와 같은 큰 욕심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이리라.
그야말로 지장보살님은 불행이 깃들지 않은 소박한 행복,
평범하면서도 만족스럽고 기쁨이 있는 생활인의 행복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28종 이익>

1. 천인과 용이 항상 지켜준다.(天龍護念)
2. 선한 과보가 나날이 더해진다.(善果日增)
3. 성인들과 좋은 인연을 맺는다.(集聖上因)
4. 보리심이 후퇴하지 않는다.(菩提不退)
5.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진다.(衣食豊足)
6. 질병이 침범하지 않는다.(疾疫不臨)
7. 수재나 화재를 만나지 않는다.(離水火災)
8. 도둑으로 인한 재앙이 없다.(無盜賊厄)
9.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人見欽敬)
10. 귀신들이 돕고 지켜준다.(鬼神助持)
11. 여자는 다음 생에 남자가 된다.(女轉男身)
12. 여자라면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爲王臣女)
13. 용모가 단정하고 빼어나다.(端正相好)
14. 여러 생 동안 천상에 태어난다.(多生天上)
15. 때로는 제왕이 되기도 한다.(或爲帝王)
16. 육신통 중 숙면통을 성취한다.(宿智命通)
17. 구하는 바를 다 이루게 된다.(有求皆從)
18. 가족 친척들이 모두 화목하다.(眷屬歡樂)
19. 뜻밖의 재앙이 모두 소멸된다.(諸橫消滅)
20. 나쁜 업의 길이 영원히 없어진다.(業道永除)
21. 가는 곳마다 모두 통한다.(去處盡通)
22. 밤에는 꿈이 안락하다.(夜夢安樂)
23. 조상들이 괴로움을 벗어난다.(先亡離苦)
24. 다시 태어날 때 복을 타고난다.(宿福受生)
25. 모든 성현들이 찬탄한다.(諸聖讚嘆)
26. 총명하고 근기가 빼어나게 된다.(聰明利根)
27 자비심이 더욱 풍부해진다.(饒慈愍心)
28. 마침내는 부처를 이룬다.(畢竟成佛)


28종 이익은 7종 이익과 10종 이익에서 설한 내용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표출시킨 것이다.
조금 특이하다면 '여자'에 대한 것으로,
다음 생에는 남자가 된다고 한 것이나(제11 이익),
여자라면 좋은 가문에 태어난다는 것(제12 이익) 등이다.

정녕 지장보살을 신봉하면 질병,
수재, 화재, 도둑 등의 모든 재앙은 사라지고 현실적으로 풍요롭게 살 뿐 아니라 좋고 또 좋은 일들이 함께 한다.
특히 내생은 복인(福人)으로 태어나는 등 행복만이 가득해진다.

이상과 같이 중생에게 행복과 이익만을 안겨주는 지장보살!
그렇지만 지장보살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든 "지장경"을 읽거나 지장보살께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앞에서 밝힌 이익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장보살님은 이러한 중생들을 위해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들의 요구를 살피고 구원의 손길을 뻗친다고 한다.
나아가 지장보살님은 자신을 우러러 칭명하고 참회하는 이들의 죄업을 소멸시켜 해탈의 세계로 이끌어 가겠다는 확신의 맹세까지 하고 계신다.

"미래세(未來世) 중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이 지장보살의 이름을 듣고 합장하거나 찬탄하거나 예경을 드리거나 간절히 생각하며 참회한다면,
이 사람은 30겁(劫) 동안 지은 죄를 초월하게 되리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지장보살의 형상을 만들어서 한번 쳐다보거나 한번 절한다면,
이 사람은 1백번 33천(天)에 태어나고 길이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지장경 여래찬탄품>

♣ 지장보살을 향한 참회

참회, 참회는 죄업중생을 위해 있는 것이다. 참회만이 죄업을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장보살을 향한 참회! 여기서 잠시 지장보살을 향한 참회를 통하여 이 땅에 참회불교의 전통을 뿌리내리게 한 큰스님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그 큰스님은 바로 진표율사이시다.

진표율사(眞表律師)는 신라 말 경덕왕 때 우리나라 법상종(法相宗)을 개산(開山)한 분이다.
그러나 이 스님은 법상종의 시조라는 사실보다 율사로 더 유명하고,
계를 얻기 위해 미륵보살님과 지장보살님께 지극 정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하여 특별한 상서를 얻고 계를 얻은 자서수계(自誓授戒)의 큰스님으로 특히 유명하다.

스님의 출가 동기는 매우 특이하였다.

활쏘기를 잘했던 어린 시절,
하루는 논두렁에서 개구리 30여 마리를 잡아서 버들가지에 꿰어 물에 담그어 두었다.
그리고는 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개구리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이듬해 봄,
다시 사냥길에 나선 소년은 논두렁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문득 지난해의 일을 떠올렸다.
그런데 바로 그 물 속에서 개구리들이 버들가지에 꿰인 채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무심코 저지른 일로 인해 이 많은 개구리들이 해를 넘기도록 고통을 받다니."

잘못을 크게 뉘우친 소년은 12세의 나이로 출가하여 모악산 숭제법사(崇濟法師)의 제자가 되었다.
진표가 숭제법사를 지성으로 모시고 지낸 지 10년이 되었을 때, 숭제법사는 진표를 불렀다.

"나는 일찍이 당나라로 들어가서 선도삼장(善導三藏)의 밑에서 수업하였고,
그 다음에는 오대산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지성으로 기도하여 문수보살로부터 직접 5계를 받았느니라."

"스님, 얼마나 부지런히 하면 불보살님께 직접 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정성이 지극하면 1년이면 되느니라."
이 말씀과 함께 숭제법사는 사미계법전교공양차제법(沙彌戒法傳敎供養次第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2권을 주면서 간곡히 당부하였다.

"너는 이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전에 참회하여 직접 계를 받도록 하라.
그리고 그 계법을 세상에 널리 전하도록 하라."
진표스님은 쌀 20말을 쪄서 말린 다음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으로 들어가 쌀 다섯 홉을 하루 동안의 양식으로 삼되,

그중 한 홉을 덜어내어 쥐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스님은 미륵상 앞에 예배를 드리며 부지런히 계법을 구하였으나,
3년이 되어도 수기(授記)를 받지 못하였다.
이에 발분한 스님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는데,
갑자기 나타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스님을 손으로 받들어 바위에 올려놓았다.
스님은 다시 결심하였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보살의 수기를 받으리라."
스님은 3 7일(21일)을 기약하여 몸을 잊고 참회하는 '망신참(亡身懺)'을 시작하였다.
온몸으로 바위를 두들기듯 엎드려 절하면서 부지런히 참회한 것이다.

3일째가 되자 스님의 손과 팔은 부러져 떨어졌다. 그러나 스님은 참회를 멈추지 않았다.
7일째 되던 날 밤에는 지장보살이 금장(金杖)을 흔들며 와서 스님을 돌보아 손과 팔을 전과 같이 고쳐주고, 가사와 바루를 주었다.
스님은 지장보살의 신령스러운 감응에 감동하여 더욱 참회하였다.

마침내 3 7일이 되던 날, 천안(天眼)을 얻은 스님은 미륵보살이 도솔천(兜率天)의 무리들을 거느리고 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때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은 스님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대장부여,
이렇듯 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참회하였구나."그리고 지장보살은 계본(戒本)을 주고, 미륵보살은 '제9간자(第九簡子)'라고 씌어진 두 개의 나무로 만든 간자(簡子)를 주면서 당부하였다.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 뼈로서 시각(始覺:닦아서 이루게 되는 覺)과 본각(本覺: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覺)을 상징하는 것이다.
또 제9간자는 법이(法爾:진리 그 자체)이고,
제8간자는 신훈성불종자(新熏成佛種子:부처를 이루 수 있는 씨앗을 새롭게 키우는 것)를 뜻하는 것이니,

이것을 통하여 너의 과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 몸을 버리면 대국왕의 몸을 받았다가 그 뒤에 도솔천에 태어나게 되리라."
말을 마치자 두 보살은 모습을 감추었다.
그 뒤 진표율사는 금산사, 법주사, 발연사 등지에 머물면서 해마다 계단(戒檀)을 열어 중생들을 크게 교화하였으며,
이 땅에 참회불교를 정착시켰다.

참회를 통하여 미륵보살로부터 직접 계를 받기를 원하였던 진표율사는 쉽사리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몸을 잊고 참회하는 '망신참'을 택하였다.
그 결과 3 7일 만에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큰 가피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미륵보살로부터 계를 받고자 하여 미륵보살께 예배를 하였는데,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가피를 내리고 보호를 하였으며 또, 계본(戒本)도 주었다는 점이다.
이 속에 간직되어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까닭이 바로 선운사의 '도솔천 내원궁'에 미륵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모신 두 번째 이유이다.
곧 진표율사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특별한 부촉에 따라 후세 중생을 '책임지겠다'고 세 번이나 맹세한 지장보살을 의지하고,
그 지장보살 앞에서 참회하는 것이 미래에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나고 현세의 행복을 이루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신앙형태를 근거로 삼아,
진표율사와 그 맥을 이은 스님들은 도솔천 내원궁에 앉아 내세에 제도해야 할 중생을 관찰하고 계신 미륵보살 대신,
선운사 도솔암의 '내원궁'에서처럼 지장보살을 모셔,
중생들로 하여금 미륵불의 용화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고 현세의 행복이 보장되도록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세와 내생의 행복을 찾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참회이다.
참회! 진표율사처럼 온몸이 부서지도록 참회를 하는 망신참(亡身懺)이 아니라도 좋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이 뉘우치며 행하는 지심참회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지심참회(至心懺悔)! 그것은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생(多生)에 지은 죄업을 무조건 참회하는 것이다.
보통의 기도는 자신이나 가족의 행복 등 그 어떤 목적을 염원하며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심참회는 무조건 참회하는 것이다.
그 어떤 자비에 연연하지 않고 무조건 '잘못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다운 참회이다.

'잘못했습니다'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은 녹는다.
모든 업장(業障), 모든 이기심, 그 어떤 모순도 녹아내린다.
비록 죄업이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장보살의 원력과 자비를 생각하며 지심참회하면 그 사람은 곧 지장보살의 분신 중 하나가 되며, 그들이 바라는 모든 소원 또한 지장보살의 원력 속에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녕 업장소멸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지장보살을 향하여 지심참회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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