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석굴들
중국 5대 석굴에 속하는 원강석굴, 마이지산 석굴 등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조각에 감탄

▲ 윈강석굴 - 뚫린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에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3번 굴의 대불.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가 서역을 통하여 중국으로 전해진 것은 대체로 기원 전후 무렵이었다. 당시 실크로드를 따라 활발하게 동진(東進)하는 상인 틈에 끼어 승려들이 몰래 중국으로 스며들면서 불교가 전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 침투경로에 따라 불교 문화의 양상이 조금씩 달리 나타난다.

불교예술이 간다라 중심 지역에서 험난한 파미르를 넘어 직접 파급되었다는 서역남로의 여러 오아시스에는 스투파(불탑) 건축이 많은 데 비해 지금의 아프간 바미안 방면에서 파급되었다고 여겨지는 서역북로의 여러 오아시스에는 바위산에 동굴을 파서 안쪽 방의 벽면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림을 그린 굴원 양식이 많다. 이렇게 불교문화는 중국 대륙 깊숙이 파고들었고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 윈강석굴 - 흙빛의 암벽에 벌집처럼 수많은 석굴들이 뚫려있는 윈강석굴의 전경.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서역남로의 스투파 문화는 대부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이제 폐허 속에 그 자취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서역북로의 여러 굴원 문화는 쿠차, 투르판 등 사막 속의 여러 오아시스에서뿐만 아니라 멀리 베이징 인근에서까지 불교 예술의 극치를 오늘날까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흔히 중국의 3대 불교 석굴을 말할 때 베이징 인근인 다퉁(大同)에 있는 윈강 석굴, 뤄양(洛陽)의 룽먼 석굴, 둔황(敦煌)의 막고굴 등을 꼽는다. 규모와 화려함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다시 5대 석굴을 말한다면 여기에 간쑤성(甘肅省) 톈수이(天水)의 마이지산 석굴과 황허강 유역의 빙링스 석굴을 더할 수 있이다. 물론 이 외에도 여기에 필적할 만한 여러 석굴들이 있다.

▲ 윈강석굴 - 11번 굴의 중앙에 자리한 불상과 주변 벽면의 벽화와 부조들.

서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윈강석굴은 다퉁 시내에서 16㎞ 떨어져 있는 야산 기슭의 암벽에 벌집처럼 만들어 놓은 석굴이다. 불교가 중국 대륙 깊숙이 침투하여 일찍부터 전성기를 누려왔음을 말해주는 곳인데, 이 석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500년 전쯤이다. 당시 북위의 승려 탄야오의 지휘 아래 파기 시작한 이곳은 494년 뤄양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데, 10만여점의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세월과 기후, 그리고 약탈자들의 잔혹함을 견뎌낸 5만여점만이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 빙링스 - 배를 타고 황허강 상류의 빙링스 석굴에 도착한 관람객들.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석굴은 누각 바로 뒤의 5·6번 굴이다. 한 조가 되어있는 듯한 이곳은 규모도 규모지만 섬세한 기교와 현란한 색채도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또 희미한 조명 속에 떠오르는 부처의 얼굴 하나하나에 순수무구한 미적 감각이 담겨 있음은 물론이요, 시대를 초월해 다른 차원으로 유혹하는 듯해 보인다.

번호가 붙어있는 굴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가지고 감탄을 연발케 한다. 그 중에서 16번에서 20번까지의 다섯 굴에 있는 거대한 조각상은 ‘황제는 곧 이 세상의 여래(如來)다’는 생각으로 현존하는 황제를 포함한 태조 이하 다섯 황제를 부처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곧 왕법과 불법의 일치를 상징한다. 그러나 가장 역사가 깊은 만큼 훼손의 정도도 심하다. 자연적인 훼손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파괴로 보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 빙링스 - 황허강 상류에 있는 빙링스 석굴의 대불.

▲ 빙링스 - 기기괴괴한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황허강 상류.

마이지산 석굴은 톈수이라는 도시 근교에 있는데, 이곳은 서역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마치 보릿다발을 쌓아놓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우뚝 솟아있는 이 작은 산에 벌집처럼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아주 특이해 보인다. 모두가 북위 시대에 시작해서 수·당·송대에 걸쳐 만들어진 불교 석굴들이다. 현재 194개의 석굴에 벽화의 일부와 조각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너무 많이 훼손되어서 텅 빈 굴이 많다. 절벽에 설치된 좁은 통로를 따라 오르내리며 들여다보고 다니는 것이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재미가 쏠쏠할 뿐만 아니라 좀 떨어진 곳에서 특이한 외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실크로드의 전설을 꿈꾸게 만든다.

▲ 마이지산 석굴 - 보릿단을 쌓아놓은 듯하다는 형태의 마이지산 석굴 전경.

또 하나의 석굴사원 빙링스를 찾아가는 길은 배를 타고 황허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지에 위치하고 있다. 3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니 산세가 바뀌어 기암절벽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한순간 분위기를 압도하더니 틈새로 뭔가를 보여준다.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불상이다. 거기에 빙링스 석굴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 마이지산 석굴 - 석굴 정면에 새겨진 거대한 부조들.
먼 옛날을 꿈꾸는 듯한 분위기에 휩싸여 석굴 앞에 서니 중앙 벽면에 새겨진 27m 높이의 거대한 미륵불상이 우선 압권이다. 이곳에는 183개의 석굴이 있는데 그 안에 크고 작은 불상이 776체나 봉안되어 있다. 서진(西秦, 385~431년)에서 청대(淸代)에 걸치는 1500여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조성된 것들이지만 대부분 당대(唐代)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중 169굴에 들어있는 빙링스 불입상은 그 곁에 건홍(建弘) 5년(424)의 햇수가 담긴 먹글씨 기록이 남아 있어 서진의 문소왕(文昭王) 말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중국 석굴불상 조각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연대가 확실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 이 불입상의 왼쪽 발 아래에는 다시 ‘법현이 이를 공양하다’(法顯供養之)는 먹글씨 기록이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법현이 최초로 인도 순례를 한 그 법현이라면 그가 순례를 떠나던 해인 399년 이전에 이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 옛날 서역의 험로를 오가던 고승들에게 오아시스 역할을 해 오면서 번성했던 이 빙링스 석굴. 그러나 이제 댐 건설로 인해 옛 길은 사라지고 물에 갇혀 외로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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