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끝이 없는 자신의 발견을 위함 입니다.

부처님 말씀중 공부와 배움에 관한 말씀들 소개합니다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 모셔라
의리 없는 일은 항상 피하고
어리석은 사람과 친하지 말라.
현명한 친구 따르기를 생각하고
훌륭한 스승을 가까이서 모셔라.
<법구경>상권 한글장54쪽

배움이란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타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 나라에 시복(尸蔔)이라는 범지가 있었는데, 부처님 처소에 와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배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이름하여 배움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배우기 때문에 배움이라고 칭한다.”
범지가 또 물었다. “어떻게 배우기 때문에 배움이라고 칭합니까?”
“수시로 닦고 배워서 계행을 더 향상시키기 때문에 배움이라고 말하며, 수시로 닦고 배워서 마음을 더 향상시키기 때문에 배움이라고 말하며, 수시로 닦고 배워서 지혜를 더 향상시키기 때문에 배움이라고 말한다.”
<별역잡아함경>

 

정밀하고 미세한 데까지 공부하라.
어떤 사람이 커다란 돌 하나를 갈고 있었다. 부지런히 공을 들여 갈아서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조그만 장난감 소 하나를 만들었는데, 들인 공이 매우 많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은 아주 적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큰 돌을 간다는 것은 부지런히 애써 공부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고, 조그만 소를 만들었다는 것은 명예를 위해 서로 시비를 따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무릇 공부하는 사람은 정밀하고 미세한 데까지 연마하고 생각하며 박학(博學)하게 많이 알아 그대로 실천하며 훌륭한 결과를 원대하게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당장의 명예만 구하면, 교만하고 거만하여 허물과 근심만 더욱 자라나게 할 것이다.
<백유경>

 

자기의 페이스를 유지하라
부처님께서 점파국(占波國)의 뇌성(雷聲) 못 가에 계셨다. 이때 존자 이십억이(二十億耳)는 어떤 고요한 곳에서 스스로 법의 근본은 닦아 12두타(頭陀)의 행법(行法)을 버리지 않고, 밤낮으로 늘 스스로 격려하여 잠깐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욕루(慾漏)의 법에서 마음이 해탈하지 못하였다. 존자 이십억이는 곧 생각하였다.


‘석가문(釋迦文)부처님의 제자로서 고행(苦行) 정진(精進)하는 이들 중에 내가 제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날까지 번뇌의 마음(漏心)에서 해탈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우리 집은 재산도 많고 보배도 넉넉하다. 나는 차라리 이 가사를 벗어버리고 세속 사람으로 되돌아가 집안의 재물을 가지고 널리 보시하는 것이 낫겠다. 사문 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세존께서 멀리서 이십억이가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곧 허공을 날아 그가 경행하는 곳으로 가서 이십억이에게 물으셨다.

“이십억이야, 너는 본래 세속 집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본래 속가 집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습니다.”
“만일 거문고 줄을 너무 죄면 그 소리가 고르지 못할 터인데, 그때에도 거문고 소리를 잘 나게 탈수 있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거문고 줄을 다시 느슨하게 하면 그때에도 거문고 소리를 잘 나게 탈 수 있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거문고 줄을 너무 죄지도 않고 너무 늦추지도 않으면 그때는 거문고 소리를 잘 나게 탈 수 있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공부하는 일도 그와 같다. 너무 지나치게 정진(精進)하면 그것은 마치 조롱하고 장난치는(調戲)것과 같고, 게을리 하면 삿된 소견에 떨어지게 된다. 만일 그 중간에 있으면 그것이 최상의 행(行)이다. 그렇게 하면 오래지 않아 마땅히 번뇌가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니라.”
<증일아함경>

 

무리하게 하지 말라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아나율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아나율은 대중 속에서 졸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나율이 조는 것을 보시고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라의 법이나 도적이 두려워 도를 닦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너는 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느냐?”
“늙음․병듦․죽음과 근심․걱정․괴로움․번민을 싫어하고,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기 위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존이 몸소 설법하는데 어찌 거기서 졸고 있느냐?”
“지금부터는 몸이 문드러지더라도 결코 여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존자 아나율은 새벽이 되도록 자지 않았다. 그러나 잠을 버릴 수는 없었고 결국 눈이 손상되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무 열심히 정진하면 조바심이라는 덮개(調戲蓋)와 상응하고 또 너무 게으르면 결박(結)과 상응하게 된다. 너의 행동은 그 중간이어야 하느니라.”
“저는 전에 벌써 여래 앞에서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와서 그 약속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의사 기역(耆域)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나율의 눈을 치료해 주어라.”
기역이 대답하였다.
“만일 아나율이 조금이라도 잠을 잔다면 저는 그 눈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잠을 자라. 왜냐하면 모든 법은 먹어야 존재하고 먹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눈은 잠으로 음식을 삼고, 귀는 소리로 음식을 삼으며, 코는 냄새로 음식을 삼고, 혀는 맛으로 음식을 삼으며, 몸은 감촉으로 음식을 삼고, 뜻은 법으로 음식을 삼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열반에도 음식이 있다고 말한다.”
<증일아함경>

 

노력 없이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선 왕의 가문에 태어나셨고, 나무 아래 앉아서 도를 생각하신 지 6년 만에 부처가 되었으니, 너무나 쉬울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어떤 장자가 있었는데 큰 부자였다. 온갖 보배를 다 갖추었으나 오직 빨간색의 진주만 없어서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데리고 큰 바다에 깊이 들어가 험난한 장애물을 헤쳐서 마침내 보배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몸에 피를 내어서 기름 주머니에 싼 뒤 바다 밑에 달아 놓았다. 주합(株蛤)이 냄새를 맡고서 입을 대어 삼키고 나서는 곧 조개를 내놓았다. 조개를 가르자 구슬이 나왔는데, 이렇게 3년 동안 기다렸다가 캔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빨간색 구슬을 얻었다. 바닷가로 돌아왔을 때, 동료가 음모를 꾸몄다. 그는 물을 길러 갔다가 장자를 우물 속에 밀어 넣은 뒤 우물을 덮고 떠났다. 뒤에 그는 구멍을 찾아서 나온 뒤에 본토로 돌아갔다. 그는 동료를 불러내서 말했다.
‘너는 내 구슬을 가져갔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돌려다오. 그러면 내가 끝내 훔친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 동료는 두려워서 구슬을 돌려보냈는데 나중에 두 아이가 구슬을 갖고 함께 놀다가 서로 물었다.
‘이 구슬은 어느 곳에서 나온 것인가?’
한 아이가 말했다.
‘내 주머니 속에서 나왔어.’
또 한 아이가 말했다.
‘집 안의 항아리 속에서 나왔어.’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웃자 부인이 물었다.
‘왜 웃는 것입니까?’
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이 구슬을 매우 애써서 얻은 것이오. 그런데 저 어린아이들은 나한테서 그걸 얻었는데도 본말을 알지 못하고 주머니나 항아리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단지 내가 성불한 것만 볼 뿐이고,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에 부지런히 애쓴 뒤 지금에야 비로소 얻은 것을 알지 못하고 쉽다고 말하는구나. 그건 마치 저 어린아이들이 주머니와 항아리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라.”
<대장일람집>

 

게으름은 죽음과 같다
만일 게으름에 빠져
활동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그는 숨을 쉬나 송장과 같아
얻은 목숨 헛되어 결과가 없다.

게으름에 병든 사람은
목숨 있어도 죽음과 같다.
그런 게으른 사람은
죽는 것이 좋다고 마음으로 생각한다.

혹 게으름의 진흙에 빠지고
괴로움의 바다에 빠져 나오지 못하더라도
다시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
그는 곧 생사의 바다 건너리.

 

열심히 배움을 찾아 공부하는것....

살아있을때 가능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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