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가의 장애 있을 때도 광명진언

광명진언은
망인의 천도뿐만 아니라,

영가의 장애가 있어
원활한 삶을 이루지 못할 때 외워도
큰 효험을 볼 수가 있다.

사람들은 불행이 닥칠 때
흔히들 조상을 탓한다.
'조상도 무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 뒤에는
부모·친척·조상 등의 영혼이
나를 돕지 않는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바꾸어 말하면
영가의 장애로 말미암아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고
더욱 꼬이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이 들어 병원을 가도
병명조차 밝히지 못하게 되면
영가의 장애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답답한 마음에 점장이를 찾아가면
제삿밥을 받아 먹지 못하는 등의
죽은 조상을 들먹이면서
굿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영가의
장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떤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영가의 장애가 있다.

특히 꿈 가운데
영가가 자주 보이게 되면
영가 장애의 신호로 보아도
거의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삶의 어려움이나
영가의 장애가 찾아 든다고 하여
굿을 하는 등의 미신(迷信)에 빠져서는 안된다.

미신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의 바른 마음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힘에 끌려가게 되면 그것이 미신이다.

특히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적절한 방법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만약 지금 '나'에게
영가의 장애가 있다면
광명진언을 외워보라.

삼칠일[21일]을 기한으로 삼고
매일 밤 향 하나를 피워놓고
30분씩만 광명진언을 외우면
모든 장애는 저절로 풀어진다.

장애가 풀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방해를 하던 영가가
우리를 도와주기까지 한다.

나는 40여 년 동안
영가의 장애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광명진언법을 일러주었고,

그 결과 광명진언을 외운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가피를 입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두 가지 경우만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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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광명진언을
한 신도에게 처음 일러준 것은

나이 30세 무렵,
태백산 도솔암에서
홀로 6년 정진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볕이 따스한 5월의 어느 날,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백짓장처럼
핏기가 없는 한 보살이

두 여인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도솔암으로 올라와서 하소연을 하였다.

"스님,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보살은 자신의
애타는 사연을 이야기 하였다.

처녀 시절, 제법 어여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한 총각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졌고,
그 총각도 그녀에게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에게로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채 10년도 되지 않아서
그녀의 남편은 물론
그 남자의 부인도 죽고 말았다.

결혼하기 전부터
서로 마음을 두었던 그들은
홀아비와 과부로 새롭게 만나
자연스럽게 결합하여 결혼식을 올렸다.

새 남편이 전처 소생의
아이 둘을 데려오기는 하였지만,

자신의 아이가 없었던 그녀는
정성껏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렇게 1년 가량을 살았을 무렵,
그녀의 꿈에 남편의 전처가 나타나서
치하를 하는 것이었다.

"내가 낳은 자식을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다.

아이들의 성질이 사납고 까다로운데
네가 와서 잘 키워주니……
어쨌던 고맙다."

처음 이렇게 찾아온 전처는
그 후 매일 밤 꿈에 나타나서
몸을 쓰다듬으며 말을 하였다.

"네가 욕보는 줄
내가 잘 알고 있네.
욕보는 줄 알고 있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전처가 꿈속에서 쓰다듬었던 자리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같이 계속되자
그녀의 몸은 몽둥이 찜질을
당한 것과 같이 되고 말았다.

마침내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는
꿈속에서 전처에게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욕보는 줄 알면 그만이지,
왜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구는거야?"

"왜 신경질을 부리고 그러나?
후처로 들어온 주제에!"

이렇게 말다툼으로 시작된 것이
마침내는 매일 밤 꿈에서의
계속된 싸움으로 이어졌다.

귀신을 상대로 하여
비방하고 헛된 소리를 하며
밤마다 잠을 설치기를 1년,

마침내 그녀는 피골이 상접하여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때 마을의 이웃 아낙네들이

"태백산에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스님이 있으니 찾아가 보자."

고 해서
부축을 받으며 30리 길을
걸어 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던 나는
원효대사의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이 나서
광명진언을 적어주고 단단히 일렀다.

"이 광명진언을
부지런히 외우면서 마음으로

'그 분에게 지혜의 광명을 주옵소서.'
하고 기원하십시오.

그분은 지혜가 어두워 죽어서까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을 놓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부디 미워하지 말고
그분에게 지혜가 생기도록
부지런히 광명진언을 외워 주십시오."

"예, 꼭 스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한달 뒤,
그녀는 제법 살도 찌고
혈색이 도는 얼굴로

촌과자 한 보따리를
싸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하였다.

"광명진언을 외우기 시작하자
죽은 전처가 문턱까지 와서는 보고 가고,

문턱까지 와서 보고 가기를
며칠 동안 하더니,
이제는 꿈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님 덕분에 저는 살았습니다."

그 때 나는 광명진언에 대한
깊은 믿음과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약 20년 전에 있었던
한 여교사의 경우는
광명진언의 큰 힘을
새삼 일깨워주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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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가을,
마흔이 갓 넘은 혼자 사는 여교사가
해인사 지족암으로 나를 찾아 왔다.

물론 그녀는 독신주의자도 아니었고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 인생을
자기의 의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 시작은 다시 20년 남짓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나이 스물 셋,
막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8개 국어에 능통하며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청년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한창 행복감에 겨워
결혼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어느 날,

신랑될 청년이
그녀의 집으로 오기 위해
대구 북비산 옆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어 즉사하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묘하게도,
그 남자가 죽은 지 꼭 만 1년이 되던 날,

바로 그 장소에서 그녀의 남동생도
차에 치어 즉사하고 만 것이다.

1년 사이에 사랑하는 두 남자를
한 장소에서 잃어버린 그녀에게
이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애인과 남동생 생각만 하면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다

마침내는 가슴이 빠개지고
쫙 벌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 했다.

병원을 찾아가도
'별 이상 없다.'는 말 뿐이었다.

다소나마 자신의 아픔을 진정시키려면
산으로 올라가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학교를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산 저 산을 찾아가다 보니
전국에 안 가본 산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중에도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그녀였으므로
많은 남자들로부터 청혼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살면 무엇하나?
나도 결혼을 하여 안정을 찾아야지."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기로 작정을 하면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
항상 어긋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수십 번도 더 계속되었다.

10여 년을 이렇게 지낸 그녀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고
설악산을 찾았던 어느 날,
그녀는 생각하였다.

'내 전생에
무슨 몹쓸 죄를 지었길래
잘살아 보려고 해도 안되고
제멋대로 사는 것도 되지 않는 것인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차라리 죽어버리자.'

그녀는 양폭산장 가까이에 있는
높이 수십 미터의 폭포위로 올라가서
배낭을 맨 채 뛰어내렸다.

하지만 죽기는커녕 다친 곳 하나 없었다.
오직 엉덩이 부분만 약간 얼얼할 뿐이었다.

'아마 산에서는 죽을 팔자가 아닌가보다.
그렇다면 내일 바다에 가서 죽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여관을 찾아가서 잠을 자는데,

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네 명이
그녀의 사지를 한쪽씩 잡고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날이 밝자 곧바로 낙산사 홍련암 옆의
바위 위로 올라가서
시퍼런 동해 바닷물 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는 몇 모금의 바닷물을 마시다가
완전히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극심한 요동이 느껴졌고,
억지로 눈을 떠보니

어젯밤의 꿈처럼
네 사람의 남자가 물을 토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인근 마을의 어부인 그들이
때마침 고기잡이 배를 저어 가다가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그녀를 보고 구조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된다.'
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 약국 저 약국을 돌면서
수면제를 사 모았고,

약 2백 알이 모이자
한꺼번에 몽땅 삼킨 다음
이불 위에 반듯하게 누워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졸음은커녕
갑자기 배가 뒤틀리더니
속에 있는 똥물까지 다 토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두 차례 더
자살을 기도하였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우연히 태백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나를 한번 찾아가보라는 말을 듣고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녀에게 영가의 세계와
영가의 장애에 대해 간략히 일러주고
두 남자를 위해 광명진언을 외울 것을 권하였다.

"죽은 두 남자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장애를 만들고 있는 것이니,
삼칠일 동안 광명진언을
외우면서 기도해 보시오.

낮 동안은
편안한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깨끗이 몸을 씻고
향 하나가 다 탈 동안만이라도
지극히 외워보십시오.

그리고 두 사람의
이름을 되뇌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면

두 영가 또한 더 이상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곳으로 떠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삼칠일 기도가 끝나면
손수 찬을 마련하여
이곳에 와서 두 사람을 위한
제사를 한번 지내주도록 하십시오.
염불은 내가 해줄 테니…."

그녀는 내가 주는
향 한 묶음을 받아 집으로 갔다가
삼칠일이 지난 다음
지족암으로 다시 찾아왔다.

"스님, 삼칠일 기도가 끝나는 날,
저는 식은 땀을 비오듯 흘리며
꿈을 꾸었습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큰 뱀 두 마리가
나의 팔을 하나씩 칭칭 감고
양쪽으로 잡아 당기는데

닭 가슴이 벌어지듯
저의 가슴이 '쩍' 하고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제 가슴이 그토록 아팠던
까닭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뱀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두려운 생각에 끊임없이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그때 머리를 박박 깎은
양복차림의 사람이 나타나더니

정육점에서 고기를
찍을 때 사용하는 갈고리로
뱀의 머리를 콕콕 찍어
밖으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마리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한 마리는 조그마한 새끼 뱀으로
변하여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깨어나자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가슴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와 나는 준비해 온 음식으로
두 남자를 위한 제사를 지내 주었고,

그녀는 그 뒤 훌륭한 불자요
훌륭한 선생님으로 열심히 살고 있으며,
지금도 가끔씩 나를 찾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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