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 신앙에 대하여
불교의 신앙에는 자력(自力)면과 타력(他力)면이 있다.
자력적인 면은, 참나[眞我]가 곧 부처여서, 모든 부처님과 참나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참나에 충실하면 그게 곧 불교생활인데 무슨 다른부처를 신앙한다는 것이냐?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처와 둘이 아닌 참나는 절대의 존재여서 상대적인 모든 것을 초월했기 때문에 여기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없다는 것도 없는 자리인 것이다.
이러한 자리는 이러한 경지(境地)에 도달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자리여서 이 경지에 오르지 못한 중생의 의식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세계인 현상계(現象界)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에게는 아무리 절대의 나[絶對我]니, 참나[眞我]니, 자성불(自性佛)이니 해봐야 헛바퀴 도는 이야기에 그칠 뿐이다.
더러 견성(見性)·오도(悟道)했다는 사람이 있어서 자력을 주장하고 타력을 비하하는 것을 보지만, 이 사람이 남과 상대되는 나를 보는 사람이라면, 다시 말하여 상대적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결국 그의 주장이 제 그의 몸뚱이를 참나로 알고, 제 그 몸뚱이를 근거로한 욕구를 따르면서 이 현상적인 나가 그대로 부처요, 이 현상적인 욕구가 그대로 평상심(平常心)인 도(道)라고 하는 것밖에 안된다.
이것이 자력을 주장하는 중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참으로 자력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 상대의 차원인 현상계에 머물고 있는 중생에게는 타력 신앙만이 제격에 맞는 신앙이요,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는 길인 것이다.
현상계는 분명한 상대의 세계여서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인연으로 화합된 현상세계여서 이 상대의 현상세계에는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고,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으며 어둠이 있으므로 밝음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므로 분명 구원도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 말하는 신앙은 절대의 세계의 절대불(絶對佛:法身佛)이 일체를 초월한신 경지에서 이 중생을 위한 인연으로 상대의 차원인 중생계에 현상신(現像身:중생들이 대할 수 있는 몸)으로 나타나셔서 중생을 교화 구제하시는 타력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장보살은 어떠한 부처님인가?
지장(地藏)이라는 명호부터 알아보자.
지(地)는 대지(大地)를, 장(藏)은 함장(含藏)을 의미한다. 지장보살은 대지처럼 모든 중생의 귀의처(歸依處)가 되며 중생을 위한 자비와 지혜와 화도(化導)와 육성(育成)의 힘을 완전하고 원만하게 갖춰서 지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부처님을 남방화주(南方化主)라고도 하는데, 남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남염부제(南閻浮提,南贍部洲라고도 함)이고 이 남염부제의 교화를 전담한 주인공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한다.
지장보살에 대한 말씀은 지장경(地藏經:地藏菩薩本願經의 약칭)에 자세히 말씀되었는데, 이 경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도리천( 利天)에 태어나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에 올라가면서 법회를 열으셨고, 그 때 거기에는 시방의 모든 세계에서 한량 없는 부처님과 보살들이 오셔서 함께 동참하셨다고 하였다.
이렇게 모이신 불·보살 중에 지장보살은 과거 한량 없는 이승지겁 전에 보리심을 발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한 중생이라도 제도되지 못한 자가 았으면 자신은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끊임 없이 지금도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행을 계속한다는 것이며, 이 보살이 특히 이 남염부제에 인연이 깊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지장보살에게 특별한 부촉(付囑)을 하셨는데, 그것이 석가모니불이 열반하신 뒤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 그 동안의 남염부제에서의 중생구제를 해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부처님 중에서 가장 수승한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대원본존(大願本尊)이시고 남염부제의 중생교화를 부처님의 간절하신 부촉으로 전담(專 )하셨기 때문에 우리 남염부제에 사는 중생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부처님보다도 가깝고 인연 깊으신 부처님이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관세음보살 신앙과 지장보살 신앙이 성행하고 있는데 대체로 관세음보살님은 현실생활에 어려움을 구제하여 주신다고 해서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이라 하고, 지장보살님은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여 주신다고 해서 고혼천도 지장보살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음신앙은 현세 이익을 위할 제 필요한 신앙이고, 지장신앙은 저승에 가는 이한테만 필요한 신앙으로 알고, 49재나 기타 영혼 천도 할 때에만 지장보살을 찾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지장경에 보면 지장보살의 형상을 우러르고 예배하고 또 그명호를 부르면 그 공덕으로 하늘에서의 그 천복(天福)이 다한 사람도 다시 그 복이 연장된다는 말씀도 있고, 그리고 어떠한 중생이고간에 중병으로 죽어갈 때 그 부모나 형제 등 권속들이 그 환자를 위하여, 그동안 그 환자 본인이 탐착하여 모은 재산으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사를 하면 그 공덕으로 병이 나아 수명이 연장되고, 만일 그 업보의 명이 다하였고, 또 무거운 죄업이 있어서 악도에 떨어지게 된 자라도 그 죄업장이 소멸되어서 다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된다고도 하셨다.
그리고 이미 죽은 부모나 친척들이 어디에 태어났는지 혹은 악도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지장보살님께 기도하면 이미 악도에 떨어진 자면 구출되어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고, 또 능히 37일 동안만 지성껏 기도하면 지장보살님의 분화신(分化身)이 나타나서 죽은 이의 현재의 상황을 알리어 직접 보게도 한다는 말씀도 있다.
또 중생을 구제하고 싶다는 보살의 서원을 세우고 지장보살님께 일심으로 기원하면 그러한 큰 원도 빨리 성취된다는 것이며, 또 업장 지중한 중생이 대승경전을 배워서 익히려하나 그 업장 때문에 자꾸 잊어버리는 경우엔 지극한 마음으로 지장보살님께 업장소멸을 발원하면서 살생과 간음 등 범계(犯戒)함이 없이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다스리고, 지장보살님께 바쳤던 청수(淸水:다깃물)를 마시면서 삼칠일 이상 정진을 계속하면 지장보살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정수리에 물을 부어주시는데, 이런 꿈을 깨고나면 곧 총명해진다는 것도 말씀하셨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학생들의 진학문제가 아주 큰 문제여서 학생 본인은 물론, 그 부모형제까지도 따라서 지독한 열병을 앓는데, 그래서 이 병으로 더러는 재산과 명예와 지위를 날리고 심하면 목숨까지도 날리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무리해서 돈이나 권력 따위에 의한 부정한 수단을 꾀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본인의 생각부터 바르게하여 앞으로 겨레와 나라를 위한 올바른 일꾼이 될 것을 서원하고 그 순수하고 갸륵한 마음으로 '업장을 소멸하여 주옵소서...''대중을 위하여 봉사하는 옳은 일꾼이 되어지이다...'하고 지장보살님께 37일 이상 기도 정진을 하였으면...하고 권하고 싶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빈궁·병약·집안의 불안정·권속의 분산·꿈자리 사나움 따위도 없어지며 또 부득이해서 험난한 곳에 가더라도 미리 지장보살 명호를 만 번 이상 부르면 지나는 곳마다 그곳의 선신(善神)들이 보호해서 안전하게 된다는 말씀도 하셨다.
지장보살님의 형상을 그림으로 혹은 조성해서 모시라는 말씀도 있고, 지장보살의 형상에 우러러 예배·공양하며, 지장보살의 명호를 부르라고 하신 것인데 여기에 내용적인 중요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대체로 겉모양은, 그것의 내용이 겉에 표출된 것이다. 예를 들면 사나운 인상은 사나운 마음이 표출된 것이고, 선량한 얼굴은 착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교묘한 말과 얄팍한 아첨으로 위장을 잘하는 자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의 밝은 눈 앞에는 그 간교(奸巧)한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중생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 중생의 내용인 용렬함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고 부처님의 원만구족하신 상호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원만하신 덕성(德性)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저 원만하신 만덕존상을 우러러 예경할 때, 부처님의 저러한 상호의 이면에는 원만구족하신 광명·생명·자비·지혜의 본원주체(本元主體)가 있어서 거기서 천지만물 일체중생을 포용하여 기르는 신령한 생명의 빛과 인자한 덕화의 기운이 끊임없이 방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걸 생생하게 느끼는 감동으로 벅차서, 다른 어떠한 의혹이나 불신 따위 중생의 업장운(業障雲)이 말끔히 사라져버린 상태로 되는 것이 기도하는 자에게 갖춰져야할 일심(一心)인 것이다. 이러한 일심으로 불상을 우러르면서 오직 감사와 감동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이 옳은 염불이요, 정진이다.
만일 이러한 감동이 없다면 아무리 불상을 우러러 예배하고 부처님 명호를 부르더라도 그건 마치 글을 읽으면서 그 뜻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수박 겉핥기의 염불이 되어서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모든 부처님은 결국 한 법신(法身)의 작용이므로 자타의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앞장서면 지장보살과 기타 모든 불·보살이 그 뒷바리지를 하시고 지장보살이 선두에 서면 관세음보살 등이 그 뒷받침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걸 모르면 관세음보살을 항상 모시던 사람이 지장보살 기도를 하게 되면 관세음보살이 서운해 하실 것 같고, 지장보살만 의지해온 사람이 관세음보살을 찾으면 지장보살이 덜 좋아하실 것 같은 유치한 생각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부처님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 그때 그때의 경우에 순응해서 어떠한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도 그 부처님을 초점으로 해서 모든 부처님의 힘이 집중투사(集中投射)되어 온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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