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을 수행하려면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라는 확고한 믿음, 그리고 화두에 대한 커다란 의심과 더불어 크게 분한 마음인 대분심(大憤心)을 내야 한다. 내 자신이 본래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중생놀음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내는 것이 대분심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뒤돌아보자. 하루라도 원망, 시기, 질투, 대립, 갈등 없이 지나가는 날이 드물다.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일을 처리해 나간다기보다는 일에 끌려 다니고 일에 눌리고 일에 사로잡혀 허둥지둥 대면서 이러저러한 경계에 부딪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신경질이 나고 울화가 터진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치기도 한다. 그리고 경계에 부딪혀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 체험을 하게 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참회하는 것은 좋은데, 그로 인해 자기를 무지막지하게 학대한다. ‘아! 나는 이러한 인물밖에 안되는구나, 나의 능력이 이 정도다, 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중생인가보다’ 라고 하며 자기를 끊임없이 망상과 잡념의 구렁텅이 속으로 집어넣고 자기를 못살게 한다. 실로 끝없는 고통의 연속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달콤한 눈앞의 이익과 편안함에 현혹되어 더 가지려 하고 더 먹으려 하고 더 게을러지고 더 편해지고자 한다. 그저 육신과 육망이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고 육신이 하자는 대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그 길로 덮어놓고 접어든다. 그래서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갖고 싶으면 가지려 한다. 이렇게 욕망이 하자는 대로 하루 이틀 살아가다 보니 도저히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가 없다. 진정한 평화와 내면의 행복은 저 멀리서 가물가물 손짓할 뿐 잡히지가 않는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어느덧 나이가 들어 늙어가고 병들어 죽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살며 죽어가고 있다. 내가 본래 부처임을 망각하고 이렇게 중생 놀음에 눈이 멀어 하루 이틀 망가지고 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죽음 앞에서 죽지 않으려 몸부림치지만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다. 자신은 절대 죽을 것 같지 않았는데 죽음은 이미 내 곁에 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흔히 내일 모래 사형선고를 받은 암 환자들도 절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단다. 그렇게 준비 없이 죽어간다. 이 어찌,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 않은가.

이것이 우리들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어가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결코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게 욕심 부리고 다투다가 어리석고 허무하게 죽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가슴으로부터의 철저한 반성과 분한 마음이 일어나야 한다. 본래 부처인데 중생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철저한 참회와 억울해 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중생으로서의 삶을 벗어나 내 자신의 본래 모습을 확인해 보겠노라는 마음이 내면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간직하고 있어야 적어도 내가 화두를 들어야겠다, 수행을 해야겠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분심이 올라와야 화두를 들다가 졸음이나 잡념에 빠져 있다가도 정신을 바싹 차리고 화두와 겨루어 나갈 수 있다. 나아가 길을 걸으면서도, 어떤 경계에 부딪히면서도 화두를 마음에 딱 붙들어 맬 수 있다. 그래야만 일상에서 어떤 경우에 직면하더라도 거기에 매몰되어 혼비백산하지 않고 화두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화선 수행자는 중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억울하고 분한 마음과 나의 본래 모습을 확인하고 행복하고 잘 살아가야겠다는 각오와 서원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불교경전공부 > 불교신행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다라  (0) 2007.08.15
21가지 생활속 불교 수행문  (0) 2007.08.14
무상게(無常偈)  (0) 2007.08.09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 (독경 월공스님)  (0) 2007.08.09
아미타 삼존도  (0) 2007.08.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