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종교와 불교
(1) 종교
종교는 인간을 정화하고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며, 현실의 고통을 해소하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 마르크스: 종교는 인민의 아편
(종교가 그 사회에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갈등만 양산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부정적 입장에서 바라본 것)
(2) 불교의 특징: 깨달음의 종교, 실천의 종교, 지혜의 종교, 자비의 종교, 평등의 종교,
평화의 종교
① 깨달음의 종교: 불교는 스스로 깨달음, 즉 자각(自覺)의 종교다. 다른 신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
라, 스스로 자각하여 부처가 되는 종교다. 즉, 타력문(他力門)이 아니라, 자력
문(自力門)이다.
② 실천의 종교: 불교는 형이상학적, 현학적, 관념적 종교가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문제를 해
결을 지향하는 실천과 행동의 종교다.
* 이에 걸맞는 유명한 고사(故事)가 있다. 중국 당나라 대시인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찾아가 "불교의 대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스님은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이라고 하니, 백낙천은
웃으며 "그런 것은 어린 애도 다 아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니, 스님은 "비록 세살의
어린애도 다 알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③ 지혜의 종교: '지혜'란 우주의 진리,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 즉 존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윤회와 고통
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이는 12연기의 첫째인 '무명(無明)'이라 한다.
④ 자비의 종교: 자비(慈悲)의 원뜻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다. 자(慈)는 여락 즉 상대에게 즐거움
을 주는 것, 비(悲)는 발고, 즉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모든
것을 용납하고 수용하는 '섭수(攝受)'와 악에 대해서 분노하고 굴복시키는 '절복
(折伏)'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뜻도 가지고 있다.
⑤ 평등의 종교: 타종교는 신과 주종(主從)의 관계이지만, 불교는 부처와 중생의 본질에 차이가 없
다. 이는 중생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사성
계급제도를 부정하고 이를 타파하려고 하셨다.
⑥ 평화의 종교: 인류 역사상 종교라는 미명(美名)하에 수없는 성전(聖戰)으로 무고한 생명이 끔
찍한 죽음을 당해왔다. 이는 종교본질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결과에서 초래
된 비극이다. 불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어 평화의 종교
라고 말할 수 있다.
(3) 중생계의 실상(實相): 제로섬게임, 서바이블게임, 적자생존,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너의 행복은 나의 불행, 안수정등(岸樹井藤), 생사
윤회(生死輪廻),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세계
* 안수정등(岸樹井藤): 한 사내가 코끼리에 쫓겨 우물을 발견하고 그 속으로 피한다. 다행히
칡넝쿨이 있어 거기에 매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우물안에는 독사들
이 우글거리고, 쥐 두마리가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했으나, 칡넝쿨꽃에서 떨어지는 꿀맛에 취해
위급한 현실을 잊어버렸다. 이는 위급한 상황을 대처해야하는데 꿀이
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더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해석이 된다.(무구)
(4) 불교의 이상(理想): 이고득락(離苦得樂), 전미개오(轉迷開悟), 혁범성성(革凡成聖), 안심입명
(安心立命), 해탈(解脫), 열반(涅槃), 견성성불(見性成佛)
-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는 것, 고통의 원인을 제거함
으로써 진정한 열반락(涅槃樂)을 얻는 것.
- 전미개오(轉迷開悟): 미혹하고 어리석음에서 해탈하여 깨달음을 얻으려는 것.
- 혁범성성(革凡成聖): 범부(중생)적인 것을 고쳐서 성인(부처)을 이루려는 것.
- 안심입명(安心立命): 마음속의 모든 번뇌.망상을 잠재우고 편안하게 하고 천명에 맡김.
- 해탈(解脫): 생사의 속박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 열반(涅槃): 모든 욕망과 번뇌의 불꽃이 꺼진 고요한 적멸(寂滅)의 상태
- 견성성불(見性成佛): 자기안에 내재된 부처의 참성품을 직관(直觀)하여 부처가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