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 우란분재의 문화를 남기며 어머님을 천도했던 

효의 상징 부처님제자 "목건련"의 모든것에 대한 글을 우리 불자님에게 소개합니다 

 

10대 제자 중 ‘신통제일’ 목련존자

 

경전에서 많이 등장하는 ‘마하목갈라나’는 목련존자의 산스크리트어 이름이며, 대목련, 마하목건련 등 여러 가지 음사한 이름들이 있다. 존자는 마가다국 왕사성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꼴리따에서 출생하였다. 부처님 제자로 출가하기 전에는 마을이름을 따서 ‘꼴리따’로 불렸다.

 

목련존자는 절친한 친구 사리불 존자와 함께 어려서부터 죽마고우로 지냈으며, 육사외도 중의 한 사람인 산자야의 문하에서 수행한 적도 있다. 두 사람은 청소년기에 왕사성 인근에서는 신동으로 소문이 날 정도로 똑똑하였다. 사리불존자의 어릴 적 이름은 ‘우빠띳사’였다. 우빠띳사와 꼴리따 두 사람은 왕사성 축제가 있었던 어느 날 언덕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광경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아! 불과 백년도 지나지 못하여 저 밑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 땅 위에서 사라져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실로 무서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해탈의 길을 찾아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이 선택한 첫 번째 스승이 산자야였다. 산자야 문하에서 수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스승의 모든 가르침을 이해하고 수행과 학문에 숙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빠띳사와 꼴리따는 가르침의 수준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우리 둘 중 누구든지 먼저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를 만나거든 지체하지 말고 서로 알려주기로 하자”라고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두 사람이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하게 된 인연은 다섯 비구중의 한 사람인 앗사지 존자로부터 부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시작되었다. 앗사지 존자는 우빠띳사에게 연기법과 관련된 게송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우빠띳사는 꼴리따에게 이 게송을 들려주면서 드디어 부처님의 문하로 들어갈 것을 권하였다. 부처님을 찾아뵙고 두 사람은 제자가 되었고, 그때부터 우빠띳사는 사리뿟따로, 꼴리따는 마하목갈라나로 불리었다.

 

어린시절 사리불과 죽마고우로 지내

앗사지 비구와 만남으로 출가 인연


목련존자는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몸의 네 가지 구성요소인 지수화풍 4대와 몸과 마음의 다섯 가지 모임인 오온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깊이 관찰했다. 이 관찰을 통해서 목련존자는 일념의 집중된 삼매를 체험할 수 있었으며,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일체의 고뇌로부터 벗어나 신통력을 갖추었다. 그것은 출가한지 7일 만의 일이었다.

이 때 일부 비구스님들이 목련존자의 수행력을 의심하여 “마하목갈라나 테라는 아직도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있으며, 그에 집착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마하목갈라나는 세상의 모든 물질적, 정신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났으며, 집착이 없는 닙바나를 성취한 수행자이다”라고 목련존자의 수행력을 인정하였다. <법구경> 게송 411번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 날 목련존자와 관련하여 설하신 가르침이다.

“그는 욕망을 구함이 없고 사성제의 진리를 깨달아 의심이 없으며 니르바나를 성취하여 죽음을 초월하였나니 나는 그를 브라흐마나라 부른다.”

사리불과 목련존자가 자신들의 첫 스승인 산자야에게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될 것을 권유하자 산자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적고 어리석은 사람은 많다. 지혜로운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것이다.”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들이 모여서 혹세무민하는 삿된 종교를 퍼뜨린다. 참된 진리와 지혜로운 스승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중생 교화 매진하다 ‘순교’

 

목련존자는 부처님 교단에 두 가지 중요한 공양을 올렸다. 하나는 우란분절의 문화를 공양올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생 교화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순교의 공양이다. 우란분절이 백중이라는 절기 포교의 사상적 근원이 되었다면 목련존자의 순교는 교단 내 최초 및 최대의 큰 사건이었다.

 

우란분절은 하안거 회향일인 음력 7월 15일에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을 올리며 동시에 돌아가신 선망부모와 유연무연의 모든 영가에게 천도를 위해 재를 베푸는 추선공양 의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이 행사가 동양의 24절기중 하나인 백중과 겹쳐지면서 독특한 백중 천도재라는 불교문화가 만들어졌다. 우란분절의 기원은 목련존자가 아귀도에 떨어져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제하고자 천명의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는데서 시작되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의 상수제자의 신분이면서도 어머니를 위해 직접 탁발을 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을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이와 같은 목련존자의 공양은 출가한 수행자가 효를 실천하고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효의 불교적 실천방법과 광수공양(廣修供養)의 사상적 근원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우란분절이 국가마다 여러 하위문화와 접목되어 매우 다양한 양태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선망부모님에 대한 효행과 부처님과 수행자들에 대한 공승재의 의미는 일관되게 유지될 필요가 있다.

 

우란분절 선망부모 천도위해 공양도 올려

 

목련존자의 마지막 공양은 본인의 목숨이었다.

 

존자의 설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하자 육사외도의 한 사람이며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니간타 문하의 고행자들이 존자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니간타 고행자들은 라자가하 근처 잘라실라 마을에 거주하는 자객들을 매수하여 목련존자를 살해할 것을 사주하였다. 자객들은 존자가 머무는 수도원을 포위하고 두 번이나 살해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세 번째로 자객들이 수도원을 포위하고 압박을 해오자 존자는 자신의 과거를 반조해 보고 왜 자신이 자객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지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전생에 지은 자신의 악행이 현생의 과보로 나타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목련존자가 전생에 지은 악행이란 앞을 보지 못하는 부모를 아내의 잘못된 말만 듣고 숲속에 유기하여 죽게 만든 일이다. 존자는 깊이 참회하며 전생부터 여러 부처님을 모시고 수행을 했지만 그 악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하여 태어날 때마다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존자는 이번의 죽음으로 더 이상 과거의 업장에 끄달리지 않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 137번 게송에서 악행의 과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 있다. “해를 끼쳐서는 안 될 사람과 약자에게 무기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심한 고통을 당하거나 아주 가난해지거나 팔과 다리를 모두 잃어버리거나 문둥병 따위의 모진 병에 걸린다. 혹은 정신 이상을 일으키거나 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하거나 가족이 생명을 잃는다. 또는 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되거나 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타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당한다.”

목련존자는 전생의 악행을 현세의 수행으로 극복할 수 있었지만 전생의 악업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 받음으로써 많은 수행자들에게 경책으로 삼을 수 있게 하였다. 잘못한 일의 과보는 금생이든 내생이든 언젠가는 받게 된다. 존자는 순교로써 인과법의 가르침을 실천하였고, 후학들에게 부모에 대한 공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큰 교훈을 주었다.


혼침 극복하고 깨달음 성취


목련존자는 출가한 직후부터 줄곧 마가다국의 깔라왈리뭇따 마을에서 수행하였다. 이 마을은 목련존자가 7일간 머물면서 수행 정진한 끝에 아라한이 된 곳이다. 7일간의 경행으로 심신이 지친 존자는 경행을 마치면서 곧 해태와 혼침(昏沈)에 들어 버렸다. 혼침이란 잠에 빠져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제대로 공부가 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마침 이 곳을 지나시던 부처님께서 목련존자에게 혼침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법을 설해 주셨다. 그 여덟 가지 혼침에서 벗어나는 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떤 인식을 가져 머무를 때 혼침이 생기면 그 인식을 제거하고 벗어나야 한다. 혼침을 일으키는 인식에 계속 머물면 더 졸게 되기 때문에 집중하려는 인식을 바꾸면 혼침이 제거될 수 있다.

 

둘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듣고, 배운 법을 사유하고 고찰하고 마음으로 숙고한다. 법의 사유와 숙고는 관찰하는 인식을 일으켜서 스스로를 자극시키는 방법으로 위빠사나도 유사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듣고 배운 법을 자세하게 독송한다. 독송이란 소리를 내어 읽고 외우는 간경수행법을 말한다. 소리를 냄으로써 인식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다.

 

넷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두 귓불을 잡아당기고 손으로 사지를 문질러야 한다. 이것은 몸을 자극하여 마음을 깨어 있게 하는 방법이다. 자극은 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반응을 하는 마음을 관찰하면 혼침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갈등 소멸하고 바른 인식 유지하라”

  마음 단속 못하면 삼매에서 멀어져

 

다섯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물로 눈을 씻어내고 사방을 둘러보면서 하늘의 별을 비롯하여 먼 곳을 쳐다보면 혼침이 제거된다. 이것은 가벼운 포행을 하면서 혼침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여섯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광명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집중한다. 낮에 광명을 본 것처럼 밤에도 광명을 생각하고, 밤에 본 것처럼 낮에도 생각한다. 이와 같이 열려있고 방해받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일곱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감각기능을 안으로 돌이켜 밖으로 향하지 않고 내면을 관찰한다. 바른 인식을 통해 마음이 밖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면서 생각 이전과 생각 이후를 똑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덟째, 그래도 혼침이 제거되지 않으면 정지정념의 상태에서 발을 포개고 오른 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워도 된다. 잠시 잠을 청하면서도 드러눕거나 자는 즐거움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빨리 자리에서 일어난다.

 

목련존자는 부처님으로부터 마음 송부에 필요한 핵심적인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존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고 의기소침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마음이 의기소침하면 들뜨고, 들뜨면 단속하지 못하고, 단속하지 못하면 삼매로부터 멀어진다는 점도 깨우쳤다.

또한 조용하고 소리가 없고 한적하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혼자 앉기에 좋은 장소를 선택하여 마음을 집중함으로써 목련존자는 탐욕과 취착과 갈등을 소멸하여 스스로 온전한 열반을 성취하였다.

비록 7일간의 짧은 수행이지만 목련존자는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정복하여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났다. 목련존자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음미해 보면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스승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제방에 훌륭한 교수선지식이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청정한 승가 구현에 노력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승가의 생명력은 청정함에서 비롯된다. 그 청정성을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 승가의 포살이다. 목련존자는 포살의 현장에서 신통력으로 청정하지 못한 사람을 골라내고 부처님이 계를 설하실 수 있도록 청정한 회중을 만든 적이 있었다.

부처님은 청정하지 못하고 삐뚤어진 회중과 청정하고 곧은 회중 등 두 가지로 구분하신 바 있다.

 

한 때 사위성 동쪽에 있었던 동원림 녹자모 강당에서 포살을 할 때 부처님께서는 동참한 비구들의 마음을 굽어보신 뒤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한 사람을 발견하셨다. 그런데 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이 앉아 있는 장소에서 계목을 설한다면 이 사람은 일주일 후에 머리가 깨어질 것을 아시고 그에 대한 연민 때문에 계속 침묵하고 계셨다.

 

밤이 되어 초경이 될 때 까지도 시자였던 아난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구들이 계목을 암송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청을 올렸다. 그러나 부처님은 계속 침묵하고 계셨다. 이경이 지나고 삼경이 될 때까지도 부처님은 계속 침묵 속에 계셨다. 아난존자가 세 번째 청을 올리자 부처님은 “회중이 청정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포살현장서 신통력으로 범계자 선별

부처님이 계 설할 수 있도록 만들어

 

이 말씀을 들은 목련존자가 자기의 마음으로 승가의 모든 구성원들의 마음을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승가 가운데 한 사람이 “계를 지키지 않고, 나쁜 성품을 지니고, 불결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고, 비밀리에 행하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고 주장하고, 청정범행을 닦지 않으면서 청정범행을 닦는다고 주장하고, 썩은 업에 의해 안이 썩었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탐욕의 마음이 흐르고, 청정하지 않은 사람”이 비구 중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일어나서 나가줄 것을 요청하였다. 세 번씩이나 함께 머물 수 없으니 나가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그 사람이 듣지 않자 팔을 붙잡아 현관 밖으로 끌어낸 뒤 빗장을 잠갔다. 그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회중이 청정함을 고하고 계목을 암송할 수 있도록 청을 올렸다.

 

부처님은 청정하지 못한 회중에서 여래가 계목을 설하고 암송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날부터 부처님은 계목을 설하지 않을 것이니 승가에서 자율적으로 계목을 암송하도록 말씀하셨다. 이어서 “큰 바다에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특징이 있듯이, 법과 율에도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것들이 있다”는 비유의 설법을 하셨다.

“큰 바다는 점차 기울어지고 점차 비탈지고 점차 경사지지, 갑작스럽게 절벽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큰 바다의 첫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것이다. 이것을 볼 때마다 아수라들은 큰 바다를 기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법과 율에는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과 순차적인 도 닦음이 있다. 갑작스럽게 완전한 지혜를 꿰뚫음이 없는 이것이 이 법과 율의 첫 번째 경이롭고 놀랄만한 것이다. 이것을 볼 때마다 비구들은 이 법과 율을 기뻐한다.”

 

이 가르침에서 부처님의 법과 율은 어느 한순간 단박에 깨우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흐름에 들기 위해 수행하는 예류향과 그것을 성취한 예류과를 비롯하여 일래향과 일래과, 불환향과 불환과, 아라한향과 아라한과를 성취한 여덟 부류의 성인의 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한 순간 깨달음에 도달한 것 같이 보이는 수행자도 찰나 찰나에 이 과정을 거쳐 가고 있는 것이다.

 

포살의 현장에서 목련존자는 청정하지 못한 대중을 골라내는 호법신장의 역할을 하였다. 오늘 날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부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청정함을 지키는 호법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목련존자와 같은 지혜로운 호법사가 많아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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