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은

재가신자들이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향 등불 꽃 차 과일 등의 공양물을 올리는 가장 중요한 불교의식 중의 하나다.

불공은 또 단지 부처님 전에 음식을 올려놓고 절하며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세계와 내가 하나로 통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불공은 부처님 재세 시, 사시 무렵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재가신자들이 공양을 대접하는데서 비롯됐다.

재가신자들의 공양은 두 종류였는데

스님들이 마을을 방문해 걸식하는 탁발과 신자들이 음식을 대접하는 공양청(供養請)이 그것이다.

이 공양청을 올릴 때 절차가 있었다.

먼저 사람을 보내 부처님께 귀의케 하고 공양을 청하게 된 이유, 초청 규모 등을 밝힌다.

부처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공양을 준비한다. 부처님이 정한 시간에 초청자의 집에 이르면

그 앞에 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또 차를 올리고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공양을 올린다.

공양을 마치면 부처님은 반드시 신자들에게 법문을 했다.

공양을 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재가신자는 공양을 올리고

수행자는 법문으로 보답하는 재시(財施)와 법시(法施)가 재가자와 출가자의 기본 관계였다.

하지만 이는 교환과는 다르다.

부처님은 온갖 지혜와 한 량없는 복덕을 갖추고 중생이 베풀지 않더라도

모든 중생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기 때문에 우리와 ‘기브 앤 테이크’ 관계는 아니다.

지금과 같은 불공의례가 언제부터 정형화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불공의식은 매우 체계적이고 복잡하지만 기본 골격은 부처님 당시 신도들이 공양청을 베풀던 방식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부처님 당시에는 오직 부처님과 그 제자들만을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과거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과 여러 보살, 그리고 제불보살들이 설한 법보 및 제자들 모두가 대상이라는 점이다.

 

제불보살을 개별적으로 청하여 공양하는 것을 각청(各請)이라하고

모두 함께 공양하는 것을 통청(通請)이라고 한다.

각 청에는 불공의 대상에 따라 미타청. 약사청. 미륵청. 관음청. 지장청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제불통청은 불. 법. 승 삼보를 통괄적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올리는 의식으로 삼보통청(三寶通淸)이라고도 한다.

불공의식은 〈석문의범〉에 따른 것이다.

 

‘공들여 만든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을 가진 마지(摩旨)는 밥을 지어 올리는 공양과

법당에서 대중이 함께 동참해서 읊는 독경 두 가지로 구성된다.

공양을 지어 올리는 과정은 매우 엄격하다. 공양주는 밥을 지어 뜸을 들이고

그 가운데 가장 잘된 부분을 마지 그릇에 담아 부처님께 올린다.

마지를 떠서 마지그릇에 담은 후 빨간색 보자기 또는 금색 뚜껑을 덮어두는데,

이는 사악한 기운이 마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에 앞서 오전 10시 쯤 법당 부전은 청정수를 법당 다기에 올리고 향을 켜 불공을 준비한다.

이어 불공의 첫 단계인, 공양을 올리는 불보살을 청하는 보례진언(普禮眞言)을 한다.

이 단계를 도량을 청정하게 하는 결계(結界)라고 한다.

헌공의례는 모두 26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전체 구성은 결계(結界)를 비롯, 공양청(供養請), 도량청정(道場淸淨),

가지권공(加持勸供), 공양(供養), 회향(回向), 축원(祝願), 중단헌공(中壇獻供)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공양청은 삼보를 초청하여 청한 인연을 밝히고 찬탄하는 내용이다.

이는 부처님 재세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까닭을 밝히는 대목에 해당한다.

후원에서 마지 준비를 마치면 법당에서 자진모리에서 중중모리로 올려치고 내려치는 다섯 번의 금고(金鼓)소리가 난다.

이때 행자는 마지를 법당 부처님 전에 공양한다. 행자는 혹시 침이라도 튀길까 염려하여

그릇을 자신의 입 위로 치켜든 채 다른 손으로 그 든 손을 받쳐 운반한다.

마지를 들고 가다 큰 스님을 만나더라도 절을 올리지 않는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지녔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정근 중일 때 마지를 올리는 것으로 공양청이 끝난다.

이어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양이 준비된 다음 법계를 청정케하는 진언을 외우는 단계인 도량청정이다.

다음에는 공양을 권하는 진언권공(眞言勸供), 공양물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드리는

사다라니(四陀羅尼)를 독송하고 불공에 참석한 사람들을 낱낱이 소개해 올리고 인사를 드리는 예참이 이어진다.

공양을 마치고 나면 부처님께 공양의 공덕이 회향되기를 기대하는 진언과

공양올린 대중의 원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진언을 외운다. 끝으로 공양을 바친 사람에게 노전이 축원을 행한다.

이로써 상단불공이 끝이 난다. 이후 상단에 놓여있던 마지를 중단에 옮긴 후 중단 불공을 올린다.

중단불공 역시 행법이 있었지만 현재는 신중단을 향해 반배 한 다음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마지막 반배로 대신하고 있다.

상단 및 중단 헌공의례를 모두 마친 뒤 대중들은 큰 방이나 식당으로 가서 공양의례를 한다.

 

사찰에는 불공을 전담하는 건물이 있는데 바로 노전(爐殿)이다.

향적전(香績殿), 응향각(應香閣), 향로전(香爐殿)이라고도 부른다. 그 소임자를 노전이라고 부른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사시공양을 짓는 곳이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불공은 관솔가지가 아닌

향나무를 때어 밥을 지었던 까닭에 ‘향나무(香)를 쌓아놓은(積) 곳이라 하여 향적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노공간(爐供間) 이라 하여 사시공양을 별도로 짓는 부엌을 두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일반 공양간에서 지을 수없다는 뜻에서다.

통도사의 일로향각(一爐香閣)이 바로 향적전 건물이다. 예전에는 ‘공양주 소임을 한철 살면

평생 남의 밥 얻어 먹을 복을 짓는다’고 했다. 하물며 부처님 전에 올릴 공양을 짓는 노전 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큰 절에서 노전 소임을 맡기 위해서는 여러 해를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사시불공은 사찰의 가장 일상적인 의식이기 때문에 스님들은 초심자부터 이를 가장 먼저 배운다.

행자 생활을 마치고 사미(니) 수계를 받으면 각종 독경을 배우고 불공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빈 불공으로 연습한다. 빈 불공이란 말 그대로 진짜 불단에 올리는 불공이 아니라,

허공이나 나무 벽에다 대고 하는 불공연습을 말한다. 불공이 사찰에서 스님들에 의해 대행하는 형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신도들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일상적인 종교의례에 속한다.

 

불교가 가장 중시여기는 것이 보시이며 보시 중에서도 삼보를 공양하는 일이 가장 기본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신도들이 불공을 청할 때는 구체적 사유와 날짜를 지정해 사찰에 요청한다. 불공에도 길일이 있는데,

〈석문의범〉에는 “제성탄일(諸聖誕日)에 공양을 올리면 살아서도 또한 죽어서도 이익이 있다”며

4월8일 부처님 탄신일, 11월17일 아미타불 탄일, 4월4일 문수보살 탄일, 7월30일 지장보살 탄일을 들고 있다.

또 갑자 갑술 갑오 갑인 을축 을유 병인 병신 병진 정미 술인 술자 기축 기해 경오 경진 경술 신유일을

불공길일(佛供吉日)이라고 했다. 불공은 대부분 할머니 어머니 등 여자들의 몫이었다.

 

부처님 전에 올리는 공양미는 최상의 품질만 사용했다.

공양미는 다른 쌀과 함께 두지 않고 별도로 보관했다.

불공 올리는 당일 날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날은 거친 말이나 아랫사람을 꾸짖는 말 화난 얼굴 등은 일체 삼갔다.

아예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 먼동이 터기 전에 서둘러 준비한 공양미를 머리에 이고 사찰에 갔다.

그만큼 불공을 중시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할머니 어머니들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는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쌀 등 현물은 현금으로 바뀌었다.

 

불공의 참뜻은 집착과 애착을 놓아 부처님의 한량없는 복덕을 충만케 하는데 있다.

불공올리는 사람은 오직 정성을 다 바쳐 공양을 올릴 뿐 불공의 결과로 복덕을 바라거나

천당에 나기를 바라거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작은 공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구하는 바 없는 공양, 공양한 생각이 없이 행하는 공양, 그것이 최상의 공양이 되고

복덕은 저절로 임하는 것이다.

또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 불공, 신년에 신수불공, 병이 나서 쾌유불공, 재물을 비는 운수대통 불공,

아들 낳게 해달라는 생남불공 등 다양한 불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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